시골에 내려 온지 어느 덧 한달이 조금 넘었습니다(2017. 11. 10 귀향)
50년도 더 된 오래된 창고를 치우다 보니 별의 별 것들이 나옵니다.
시커먼 창고 구석에 빨간게 보여서 - 음메 뜨셔라? 하고 놀랜 다음 가까이 가서 찬찬히 보니 '장난감 말' 한마리.
너무 놀랜 나머지 이노무 말을 잡아서 마당에다 패대기를 쳤더니 통통 굴러가서 똑바로 섭니다.
장조카가 처음 태어 났을 때 아버님이 손자에게 사 준 말입니다.
가만히 생각 해 보니 저 말은 조카들이 성장하면서 시골에 내려 올 때 마다 모두 한번씩 타 본 말입니다.
아버님과 조카들의 스토리가 담긴 말인지라 다시 닦아서 말을 타고 마당 한바퀴 돈 다음, 비에 젖지 않도록 처마 밑 한쪽에 세워두었습니다.
말 이름은 천리마입니다.
저는 한때 승마를 했었습니다. 문체부장관이 발행하는 생활체육지도자 3급(승마, 테니스) 자격도 갖추었습니다.
승마인(乘馬人)의 가장 큰 바램은 마주(馬主)가 되는 것입니다.
장난감 말을 본 순간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.
승마하던 친구들과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.
친구들에게 - '여보시게 친구들, 시골에 내려 온 내가 드디어 말을 구했네. 내가 마주가 되었다고. 금방 말 한번 타고 마당 한바퀴 돌았고, 지금은 마당 한쪽에 세워 두었네. 앞으로는 시골이라 승용차 안타고 말타고 다닐거네'
아내에게 - '여보 오늘 말 한마리 구했네. 벌써 한번 타고 마당 한바퀴 돌았어'라고
그러자 갑자기 친구들 문자, 전화가 빗발칩니다.
친구들 - 말 이름이 뭐냐? 마명(馬名)이 뭐냐고? 말밥은 잘 먹이냐? 언제 한번 타러 내려갈테니 관리 잘해라. 너는 굶더라도 말은 절대 굶기지 말고 말밥을 잘 줘라. 늦잠자지말고 새벽에 일어나 꼭 말밥주어라. 이번에 내가 말밥 보낼테니 주소를 불러라 등등 주문사항도 많습니다.
나- 걱정마라. 지금 마당 한쪽에 세워 두었더니 큰 눈을 말똥말똥(?) 뜨고 나를 쳐다 본다.
새벽마다 핸드폰 문자가 시끄럽습니다.
' 자냐? 어서 일어나서 말밥주어라'
며칠 후 제주도에서 감귤 한상자가 도착했습니다. 포장 표시는 감귤인데 내용물은 당근입니다.
당근 - 바로 말밥입니다. 친구녀석이 내가 먹을 감귤은 보내지 않고 말이 먹을 당근을 보냈습니다.
참고로 제주도 당근이 제일 달고 맛이 좋습니다. 까만 화산흙에서 자라서 그렇다고 합니다.
어찌된 세상인지? 사람보다 말이 더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.ㅎㅎㅎ
그런데, 그런데 말입니다. 아내는 달랐습니다.
금방 문자가 왔습니다.
'말은 무슨 말? 개뿔. 돈도 없으면서 무슨 말을 사?
아이들이 시골 아버님 댁에 갔을 때 마다 타고 다니는 말 아녀?
절대 버리지 말고 한쪽에 잘 모셔 놔! 추운데 말탄다고 마당에 나가지 말고 방콕!해. 알았지!!!' 하고
아무튼 이노무 마누라는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놉니다.
올 겨울은 비싼 제주도 당근 씹어가며... 말타고 마당 한바퀴 돌고... 아침에 당근쥬스는 원없이 먹게 생겼습니다.
신청곡입니다 - 안숙선 쑥대머리.